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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의 동학농민혁명가, 독립운동가로 투영되다.

1894년, 척양척왜 보국안민을 외쳤던 동학농민혁명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동학혁명 실패 후 그들은 어떻게 조선을 떠났나? 학자였던 문양목, 해주 동학 접주 김구, 이름 없는 동학도 박기홍, 박기덕 형제.. 그들이 꽃피운 녹두꽃, 그리고 해외에 울려 퍼진 독립운동의 역사를 추적해본다.

■한국에서 하와이, 그리고 미 대륙까지....

19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제국 외교고문 스티븐스 처단사건이 일어났다. 일제의 한국침략에 대해 정당성을 내세운 스티븐스 처단은 동학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 문양목의 구타사건이 그 전조다. 문양목, 그는 충남 태안에서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하다 관군에 쫓겨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의 노동자가 된다. 또한 샌프란시스코와 LA를 오가며 혁명군의 기질을 살려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대동보국회를 설립하고, 후에 미주 한인 임시정부가 되는 대한인 국민회 간부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고향을 잃은 그의 생애는 쓸쓸하기만 하다. 천지인(天地人), 세 아들의 이름에 동학의 뜻을 새겼지만, 그는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샌프란시스코에서 눈을 감고 만다.

■미 대륙 전역에 뜨거워진 미주 한인 독립운동사

미주 한인의 공식 이민 역사는 1903년부터 시작한다. 하와이 이민선 갤릭호를 타고, 모두 102명의 한인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했다. 미주 한인들은 사탕수수농장과 파인애플 농장의 일꾼으로 일하면서도 조국에, 또는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 보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미주 한인들은 한국 최초의 비행학교를 세우기도 했는데, 캘리포니아 북부에 자리한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비록 2년간의 짧은 역사였지만, 한국 최초의 공군사관학교였다.

■동학에서 비롯된 독립 의지, 상해 임시정부에서 피다.

상해임시정부의 수장, 김구 역시 황해도 아기 접주로 활동했다. 그러나 동학에 실패하고, 간도로 건너가 의병활동에 가담한다. 나라를 위한 그의 뜻은 충칭 임시정부에서 꽃피웠다. 미주 한인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며, 통일된 조국의 독립을 외쳤다.

■또 하나의 녹두꽃.. 박기홍, 박기덕 형제

박기홍 박기덕 형제는 최초 이민선 갤릭호 보다 앞서 하와이로 이주한 동학도이다. 그들은 하와이 파할라에 정착하며, 사탕수수농장의 노동자로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부에서 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에 온 힘을 기울이다, 다시는 고향땅을 보지 못하고 스러지고 만다.

■120년 전의 함성, 대한독립의 근간이 되다.

1894년 정읍 고부봉기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한국에서만 국한된 혁명이 아니었다. 중국 상해와 미국 하와이, LA에 꽃핀 독립의 역사. 그 근간은 바로 동학이었다.


□ 방송일시 : 2014년 8월 12일(화) 22:00 ~ 22:50
□ 취재 : 이지현
□ 촬영 : 신재복